어두워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왔던 처음 보는 길을 어떻게 왔든가 신기하게 느끼다가, 통천문을 보고는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바위구명을 통과한 자신이 놀랍고, 극한 상황에서는 사람도 짐승처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간밤에 여기를 통과할 때 짐이 먼저였는지 몸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셋 다 신기하다 하였다..... 지금도 알지 못한다!
제석봉에서 천왕봉을 향하여 위험한 절벽이 있어서 낮에도 아슬아슬하고 겨우 통과 하는데, 어두운 밤에 내려가는 절벽 길을 어이 무사히 지나 갔는지 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리고 놀랍기만 하다.
제석봉에 오르니 잎 하나 없이 빽빽히 들어선 하얀 마른나무들!
더러는 검게 불탄 흔적이 있기도 했지만 전체는 무릎잠길 풀밭에 껍질 벗겨진 흰 나무가 삼밭처럼 서 있는데 넘어져 길게 누운 것도 있었고...
대개는 이 십여 센티 그 이하의 굵기에 가지 끝은 창날처럼 날카롭고 키가 십오 미터 전후로 보였으며, 간혹 여러 갈래 가지 벌어져 키 낮은 굵은 나무도 있고, 사이사이 굵은 나무는 톱으로 자른 흔적과 불에 탄 그루터기도 보였다.
구불구불 줄지어 풀이 누운 것은 더러 사람이 다닌 길이구나 싶었다.
(어렴 풋 남은 기억일 뿐 정확한 사실묘사는 할 수가 없다)
제석봉에서 내가 가진 쌀과 반찬을 다 내어주며 종주 잘 하라 작별을 하니...
두 분 학생은 하산을 하던 종주를 하던 같이 해야 한단다.
내려오면서 상태를 보니 움직임이 점점 좋아지고, 이 험한 길을 밤중에 전등 없이 통과한 정신력이라면 자기네 보다 훨씬 낳을 것 같다고 부추기면서 같이 종주 하자고 한다.
무리하고 억지를 쓰면 갈 수야 있겠지만, 남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다 싶어 굳이 마다하고 하산을 하겠다고 우기니, 정 그렇다면 자기들도 종주를 하지 않고 하산을 하겠단다.
한참동안 권 커니 뿌리치거니 싱갱이 하다가 결국은 독한 맘먹고 같이 종주하기로 결정, 장터목 쪽으로 길을 잡아 그리로 내려갔다.
당시의 지리산에는 천왕봉에 움막이 있고, 노고단 지금의 대피소 위쪽 밭같이 평평한 곳에 방 두 칸 초가에 사오십 대 남자 한 분이 기거할 뿐 중간의 대피소는 전혀 없었다.
학생들은 여러 장으로 등고선 그려진 지도와 고도계를 가지고 있어서, 천왕봉에서 고도 1915에 맞추며 매일 기압이 변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높이에서는 고도계를 맞추어야 된다고, 제대한 내가 군에 안간 학생들로부터 독도법을 배우게 되었다.
잡초 수북한 장터목을 지나 능선을 올라가는데, 어느새 짙은 구름이 덮어 시야는 짧고 어두우며 머리 위 나무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져 비가 내리는 가 놀라기도 하였다.
어느 높은 봉우리에서 고도계를 보더니 연하봉 이라한다.
짙은 농무로 시야가 없으니 다리에 힘도 없고, 내리막에서는 왼쪽 무릎관절이 새큼 거려 속도를 맞출 수가 없다.
능선위로 가다가 넘을 수없는 바위나 절벽을 만나면 조금씩 옆으로 돌아 갈 뿐, 크게 우회하는 지금의 길은 없었으며 두 손을 다 써야할 구간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고도계 보고 어디어디라 하며 길을 재촉하여 덕평에서 천막을 치고 나 로서는 첫 야영을 하였다.
가는 도중에 최병철씨가 어디어디라 설명을 다 하였지만, 구름에 가려 보이는 것은 없는데다, 지치고 괴로운 내게는 촛대봉 세석 신선봉 다 건성으로 들리다가 돌아와 지도를 보고서야 아! 거기 구나 하였다.
처음은 나를 사이에 두고 한참 가다가 어느 때는 둘 다 앞에 서서 천천히 오라하고는 성큼성큼 먼저 가더니 흔적 없이 사라진다.
짙은 구름 속에 들면 낮에도 시계가 십 미터도 잘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경험을 그 때 처음하고, 나뭇가지가 구름에 젖어 떨어지는 물방울이
이슬비 보다는 더 쉽게 옷을 적신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살펴야 보이는 것이 없으니 오로지 밟은 흔적이 길이요 나무뿌리 밟지 않고 미끄러운 돌 조심하며 천신만고 앞으로 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픈 왼 무릎 덜 굽히려 오른 다리에 힘을 더 실으니 끝내는 거기도 지리고, 옷은 젖은 지 오래며 힘없어 쓰러져 죽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고!
두어 번 내 짐을 빼앗아 져주었지만 미안해 내가 못 견딜 지경 이었고,
그래도 가끔 쉴 때는 서로 쳐다보며 신뢰와성취감으로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었다.
날 떨쳐두고 먼저 가버린 두 분은 해 지기 전에 가야할 남은 거리를 계산하고, 속도를 내기 위함이라는 속 샘을 모를 리 없는데도 저녁에 굳이 설명까지 부연했었다.
아! 지금 그 두 분을 찾아 가벼운 행장으로 다시 그 길을 밟을 수가 있다면.... 40년 산길에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나 보다 7~8년 아래 였으니 환갑을 갓 넘기셨겠네!..간절히 보고 싶다.
지도와 고도계를 보고 덕평을 확인하니 언제 지나갔는지 텐트 친 자리에 배수로도 파여 있고 풀을 베어 깔아던 곳이 있어 우리도 그 자리에 내가 가진 비닐을 펴고 학생들이 가진 판쵸를 깔고 군용 텐트를 쳤다.
아침에는 점심밥 까지 많이 짓기로 하고, 저녁에는 학생들이 라면이라는 것을 처음 끓여주는데, 나는 대구에 살았어도 처음 맛보는 것이지만 먹어 보니 느끼한 맛과 냄새에 약간은 비위에 거슬려도 허기진 상태라 먹을 수는 있었다.
(66년 당시 라면이 대중화되지 않아 맛을 몰랐지만, 근래에는 3박 4일을 라면만으로 산행을 할 수도 있음)
다음 날(8월 23일) 출발 준비로 짐을 꾸리는데...어!
깔고 잔 비닐을 걷으니 손가락 크기의 독사 한마리가 죽어있다.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4~5십 센티 독사가 깔아놓은 풀 밑에 들어가 우리 체중에 눌려 질식사 한 것은 분명하니 셋 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출처 : 사랑방에서 하는 40년이 된 지리산 이바구 4
글쓴이 : 돌다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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