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이야기

[스크랩] 사랑방에서 하는 40년이 된 지리산 이바구 2

범주 2006. 8. 31. 20:07



촬영 무경험에다 빌린 카메라로 5.5/7.5cm 흑백인데다 구형 스케너로 떠 올립니다.

 

위의 사진은 백무동 초입에서 쌍안경 수통과 가방의 새끼줄 짐바가 보입니다

가방 밑의 큰 돌은 얼마 전까지 있었습니다

밑의 사진은 칠선계곡 갈림길 쯤에서본 당시의 천왕봉 입니다...   죄송하고 민망합니다 !

 

    


  참샘 위 소지봉 능선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능선 따라 내려가는 길과 오른쪽 소지봉을 향하여 능선을 오르는 길이 있고, 그 중간에 중턱으로 비스듬한 길이 있는데 이정표 없고 리본 하나 없던 그 때, 많이 다닌 길이 우선이고 천왕봉이 동남향에 있으니 그리로 가야 하는데 중턱으로 난 길이 제일 뚜렷하고 방향도 동남향이라 그리로 갔는데 그것이 잘못이었다.

  오르락 내리락하며 한참을 가다 보니 내리막길이 의외로 많고 점점 길도 희미해지고 하더니 왼쪽 저 밑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아차 잘못 들었구나 싶어 돌아 서려니 너무 멀리 왔다.

  후에 추측하니 마폭포 가까이 접근하지 않았나 싶다.

  시간도 오래 되었고 움막이 있다는 천왕봉까지 밝을 때 가기가 어렵겠다 싶으니 당황스럽고 긴장이 되어 돌아가야 되는데 낭패구나 싶었다.


  쉬지도 않고 죽을힘 다하여 능선에 돌아오니 네 시 반이 지났고, 온 몸에 힘은 다 빠지고 다리는 다 결리는데다 두 무릎 중 왼쪽은 걷기가 어렵고 특히 내리막을 디딜 때는 짜릿짜릿 하다가 새큼새큼 한 것이 죽을 맛이다.


  소지봉지나 제석봉까지의 길은 지금은 신작로 같지만 당시에는 그 길도 그리 만만한길이 아닌데다 굶고 힘 빠진 내게는 고행이요 고통이었다.

  길을 가로 지른 아름드리 큰 통나무를 넘자면 왼쪽 무릎이 찌르는 듯 아프다가, 돌아가는 내리막 돌길은 아무리 조심해도 새큼하게 또 아파온다.

 주위를 익히고 경치를 살피기보다는 한 발짝 앞길을 줄이기가 내게는 전부였다.


  아마 제석봉 밑 장터목 갈림길쯤에서 어두웠을 거고, 그랬기에 그날은 고사목을 보지도 못하고, 제석봉을 지나 천왕봉을 향하여 걷다가 기어가다가했었고, 오 분여 간격으로 “사람 살리소 길 잃었습니다”를 수도 없이 외치며 몸부림을 쳤다.

  그래도 결코 죽지는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 아직 상체는 이상이 없고, 정 안되면 어디서든지 비닐로 이슬 가리고 누우면 될 것이고, 쌀이 있으니 며칠은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어두워 길은 안 보여도 머리 낮추어 살피면 하늘과 땅의 경계는 어렴풋 알 수 있었으니 구름 낀 하늘에 반달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오르막은 앞으로 가겠는데 내리막을 만나면 참으로 난감한 것이, 바로 가는 것인지 길 옆 비탈로 내려가는 것인지 분간을 하기가 어려웠다.

  

  올라 갈 때는 조금 살금살금 걸어도 되고 기어가도 되었지만 내려가야 할 경우에는 돌아서서 손으로 더듬어 체중을 확보하고 왼발을 먼저 뻗어 지지 할 데를 찾아 조심하며 오른 발도 내리고....

  어느 순간에 왼 무릎이 찌르듯이 아픈가 하면 오른쪽도 힘줄이 굳어진 것처럼 당기고, 입에 침은 말라도 마실 물이 없으니 몸이 끈적끈적할 뿐   흐르는 땀은 없고  몸은 지쳐 죽을힘도 없다. 

죽지는 않는다 하면서도 삶과 죽음을 여러 번 생각했다.


 

출처 : 사랑방에서 하는 40년이 된 지리산 이바구 2
글쓴이 : 돌다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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