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이야기

[스크랩] 사랑방에서 하는 40년이 된 지리산 이바구 3

범주 2006. 8. 31. 20:06

(천왕봉에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얼마의 거리를 움직였는지 전혀 모르면서 더러 살려달라는 고함을 쳤지만 그 소리마저 점점 작아진다 싶은데....
이리 오라는 사람 소리가 오른쪽 저 아래서 들리고 번쩍이는 불빛도 보였으니 살았다는 생각보다는 고통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듬어 보니 언덕 같고 절벽 같기도 해서 안 보여 못 가겠다하니 젊은 사람 둘이 올라와 짐 받아 들고 부축하여 내려가 움막 안으로 들어갔으니, 건국대학 학생 최병철 과 정경의 두 분이었다.
두 분은 지질과 학생으로 방학이라 울릉도에 갔다가 나선 김에 지리산에 왔으며 백무동에서 나보다 이 십 여분 앞서 출발하였다 한다.
(일 년쯤 뒤에 서울에서 만나니 백운대 인수봉에 록크라이밍을 시켜주겠다 하였지만 시간이 없어 호의를 사양하고, 그 후 몇 번 서신연락이 있다가 나의 개으름으로 단절되고 말아 회한이 된다.)

사지에서 구출된 처지라 시간을 알아 볼 경황이 없었지만 아마 자정쯤 되었을 것이다.

두 분 학생의 친절로 남은 밥 얻어먹고, 자다가 깨어 소변을 봐야하는데 전혀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어 혼자 한참을 주무르고 몸부림으로 기어 나와 일을 보고 다시 들어가 누우니 내일은 어찌할까 걱정이 밀려온다.

어렴 풋 새벽에 일출을 보러가자 하였지만 당시에는 20여 미터의 정상에도 갈 수가 없어 도저히 안 되겠다고 포기하고 말았다.(8월22일)
천왕봉 일출은 보기 어려운 장관이니 자기들이 업고 서 라도 구경 시키려는 호의도 거절 할 만큼 내 몸은 피로와 고통으로 굴신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조반을 맛있게 얻어먹고, 네발로 기어서 천왕봉에 올라 보니 구름에 쌓여 원경을 조망 할 수가 없다.
다만 네모로 돌무더기를 쌓아 중심에 천왕봉이라고 쓴 끝이 뾰족한 각목을 세우고, 그 위로 더 높게 <ㅠ>자형의 통나무가 세워져 있었다.

정상 서남쪽 십 여 미터 아래 평평한 땅에, 동서로 길쭉한 모양 한 채와 동편에 좀 작은 한 채 등 두 채의 움막이 있고, 노인 두 분이 동쪽 작은 움막에 기거 하시며 아침에 정상에 올라 기도를 하신다 하였다.
두 분 다 별로 크지 않은 키에 한분은 완전 백발이고, 한 분은 흰머리가 많은 회색 머리이셨다.

움막은 돌 사이사이 흙이 붙은 풀뿌리 덩어리를 섞어서 담을 쌓고, 기리로 가운데 긴 나무로 대들보를 얹고 서까래를 걸치고, 지붕은 나뭇가지와 풀을 얹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많은 돌로 눌러둔 상태였다.

바닥에는 확실한 기억은 없어도 덕석이나 가마때기가 깔렸던 것 같다.

어느 순간에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나며 잠깐씩 황홀하게 원경이 보이는가 싶더니 드디어 웅장한 지리 산맥이 펼쳐지고 광활한 대지가 눈 아래 다 있으니 아하 이것이 지리산이구나!... 드디어 내가 왔구나!

여러 장으로 된 지도를 꺼내어 저기가 어디라고 손가락으로 지점을 가리키는 학생들의 설명을 들으며, 이리저리 꺾이는 능선 끝에 가물거리는 반야봉과 노고단을 바라보자니 왜인지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지리산에 오른 환희의 눈물인지 몸 지쳐 돌아서야 될 처지가 원통해서 였는지, 세월 한참 지난지금도 흘린 사실은 알아도 연유는 알 수가 없다.

반대편에서도 올라오는 길이 있다기에 유심히 내려다보니 저 밑에서 올라오는 두 사람이 얼핏얼핏 보이는데, 당시에는 중산리도 법계사도 천왕샘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구름 걷히고 시계 탁 터져 사방을 둘러보며 환희에 들뜨니 어!..
어이된 일인지 아프던 다리가 멀쩡하고 온 몸이 가뿐하다.
굴신을 못 하던 몸이 약간씩의 결리는 데는 있어도, 몸 전체는 뛰어도 될 만큼 좋고 내려갈 걱정이 없어지고 안심이 되어, 앉아 일어서로 무릎운동을 해 보니 약간의 아픔은 남아 있으나 내려갈 자신이 생긴다.

종주를 하고 싶었으나 식품이 모자라 내려 갈 수밖에 없고, 자기 둘이서 업고서라도 가겠으니 하산 걱정을 하지 말라는 학생 두 분이 뭉클하도록 고맙게 생각 되었다.

나도 이제는 혼자 충분히 갈 것 같으니 두 분은 나의 것을 전부 가지고 원하던 종주를 하라고 하고...
학생들은 나를 혼자는 보낼 수 없다고 하며 우정 넘치는 다툼으로 한참동안 옥신간신 하는 중에, 부녀 두 분이 올라 오셨는데 따님은 진주 교대에 다닌다 하셨다.

큰 키에 죽 곧은 체격이신 부친은 초행인 나의 물음에 무 불통 모르는 것이 없고 모든 걸 자상하게 알려주시고, 지리산 종주를 보통은 빨라도 이틀을 잡아야 되고, 자기라면 하루에도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당시 이미 한라산과 설악산 정상을 혼자서 다녀온 오만과 자신감 덩어리였던 나도, 그 어른 말씀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산행의 경력이나 체격이 월등하게 느껴졌었다.

한참 후 중산리의 우천선생 추모비를 읽으며, 그때 그분이 우천선생이 아니었을까 싶고 그 따님이라던 분과 연이 닿으면 확인을 해 보고 싶으나 한편 확인이 된다 한들 무얼 어쩔 것이냐 싶어진다.

움막에 내려와 두 분 학생과 점심을 지어먹고 정오에 출발, 하산 길에 드니 얼마간 몸이 가볍고 이상이 없다가도, 내리막에는 왼쪽 무릎에 이상이 있고 불편하나 오른 쪽 다리는 전혀 이상이 없다. --카페 사진첩 8월 10일 4275에 사진 두어장 있음--
출처 : 사랑방에서 하는 40년이 된 지리산 이바구 3
글쓴이 : 돌다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