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이야기

멍드는 지리산...

범주 2005. 4. 27. 15:13

피멍 드는 지리산

신음하는 국토...우리는

윤정준/ 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


지리산을 둘러싸고 있는 3개 도, 5개 시 군간(전라북도 남원시, 경상남도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전라남도 구례군)의 개발 경쟁이 지리산을 점점 생태섬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관광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지리산 주변을 야금야금 파먹어 지리산은 이제 국립공원 경계 구역 속에 갇히게 되었으며, 이제는 그도 모자라 구역 안까지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지리산의 남부 능선 자락. 풍요롭고 평화로운 악양 들녘 저 너머, 한때 빨치산의 주요 이동 경로 가운데 하나였던 회남재 고갯길 바로 아래, 산비탈을 통째로 도려내 도로를 낸 끔찍한 개발의 현장이 숨어 있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등촌리에서 청암면 묵계리(청학동)까지 지리산 남부축을 자르는 총연장 16킬로미터 구간 중, 2.1킬로미터 도로 건설 구간이 지난 12월에 완공되어 비포장 숲길이 검은색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1993년부터 해마다 조금씩 길을 내기 시작해 지난해 드디어 회남재 정상 코앞까지 왔고, 이제는 거기를 넘어서 청학동으로 가는 길만 남았다.

개발 세력들은 환경영향평가를 피하기 위해, 공사 구간의 길이를 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묘히 잘라서 사업을 진행해 왔다.

 

뿐만 아니라, 악양~등촌리 구간 2.1킬로미터 공사 때에는 사전환경성검토협의도 없이 은밀히 진행하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유역환경청에서 이미 공사의 절반이 끝난 지난 5월, 환경정책기본법 위반으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사전환경성검토협의 대상 사업인데 그 어떤 협의도 없이 사업을 밀어붙였다는 까닭으로 공사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유역환경청장은 하동군이 제출한 사전환경성검토서에 대해 “생태적으로 보전해야 할 곳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미 훼손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면서 협의를 해 주고야 말았다.

 

그것도 공사중지 명령을 내린 협의기관의 장이 하동군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고 사후에 협의를 해 준 것이다.

 

 만일 이런 식으로 사후에 협의를 해 준다면 사업 시행 전에 어느 누가 수고롭게 사전환경성검토협의라는 절차를 밟겠는가?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에서 대대로 살아오신 김삼주 어르신은 “도로가 난다고 우리가 좋아하리라 생각하는가?

 

여기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을 자랑하는 곳이다.

자가용을 타고 산을 넘어다니는 관광객들은, 쓰레기나 버리고 가고 동네 상수원을 오염시킬 뿐 지역의 관광 소득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며, 이것이 내가 이 도로를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는 까닭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김삼주 어르신은 현재 회남재도로개설반대 주민대책위 의장을 맡고 계신다.

회남재를 넘어서면, 요번에는 하동군 청암면과 산청군 대내리를 잇는 묵계치라는 고갯길을 아예 터널로 뚫어 버렸다.

 

총 길이가 2.1킬로미터로, 그 중 1.5킬로미터 구간은 지리산국립공원 구역을 관통하고 있다. 공원을 관통하는 도로인데도 공원 측과 그 어떠한 협의도 없었고, 또한 환경영향평가도 없었다.

 

공사 구간의 길이가 4킬로미터가 안 된다고 해서 적법(?)하게 환경영향평가를 받지 않은 것이다. 이 지역은 특히 백두대간인 지리산과 남부지방 최대의 생태축인 낙남정맥이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지역인데도 말이다.

터널 개통을 앞두고, 터널 안 매연과 미세먼지를 강제로 뿜어내고자 가동한 환풍기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은 포클레인으로 터널 앞을 가로막고 그 대책을 요구했다.

 

경상남도 담당자와 건설업자 쪽에서는 일단 개통식부터 하고 난 뒤 대책을 세우자며 주민들을 설득했지만, 주민들은 이를 믿지 못하겠다며 한동안 줄다리기를 했다.

 

그 뒤 주민들은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라며 한 발 양보한 후, 포클레인을 스스로 철수시켰다.

 

이날 경상남도 측과 그 약속을 문서로 받아낸 원묵계 주민이신 오춘자 선생님은 담당공무원과 건설업자에게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자연을 몸살 나게 한다면, 언제가 당신들, 아니 우리 모두 큰 벌을 받게 될 게야”라고 하시며, 결국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산수유와 지리산 온천으로 유명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산동면 관산리 일대 임야에 지리산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업체 쪽은 환경영향평가에 대비한 듯 아름드리 나무를 수도 없이 불법으로 잘라내고,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사포마을 주민들을 불순 세력으로 몰면서 폭행하는 대담성을 보이기까지 했다.

 

골프장 예정 부지는 지리산 성삼재 자락으로 주민들의 상수원이 있는 곳이며, 또한 온천수를 공급하기 위해 지하에 온천공을 뚫어 놓은 곳이다.

 

이렇게 골프장 부지로는 전혀 맞지 않는 곳인데도 구례군과 건설업자 쪽에서는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영업방해에 따르는 손해배상 등 총 여섯 건의 민·형사상의 고소 고발을 해 놓은 상태이다.

지난 12월 28일, 매서운 겨울 날씨에도 사포마을을 중심으로 많은 주민들이 구례장터에 모여, 대대로 물려받은 고향 땅에서 지금처럼만 농사지으면서 살게 해 달라며 애원하듯 골프장 반대를 외쳤다.

지금 지리산권에는 구례군뿐만 아니라, 남원시, 함양군, 하동군 등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골프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실제로 추진하고 있다.

국유 임도(임업을 위해 쓰는 길) 뿐만 아니라, 군유 임도, 사유 임도 등 지리산권에는 수없이 많은 임도들이 그물망처럼 퍼져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차량을 이용해서 활공장으로 활공 장비를 나르기 위해 개설한 형제봉과 구제봉에 위치한 임도다.

 

경남 하동군에 있는 형제봉은 반달곰의 매우 좋은 서식지로 알려진 곳인데, 실제로 산림청에서 임도를 개설한 뒤 요즘에는 단 한 번도 그 근처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구제봉은 아예 봉우리 전체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철제 구조물을 설치해 보조활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무분별한 임도 개설은 그 자체의 물리적 자연 훼손뿐만 아니라, 차량을 타고 들어가기 좋아져서 야생동물의 밀렵이나 희귀 식물의 채취 같은 수단으로 사용되는 따위 2차 피해가 더 크다.

이 밖에도 경관과 수상동물의 습성을 전혀 고려치 않은 일률적인 제방공사, 양수발전소 농업용수용댐 등으로 인한 자연 계곡 수몰, 구례군과 산청군의 케이블카 계획, 산청군의 밤머리재 터널 계획, 함양군의 마천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지리산 훼손 계획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지금 계획 중인 또 하나의 개발프로젝트인 ‘지리산권광역관광개발’사업을 통해 위에서 열거한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자체장들은 내년에 있을 지방 선거까지 염두에 두면서, 지역의 숙원 사업을 문화관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실속이 있든 말든 겉이 화려한 사업 위주로 계획을 세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인간이 편의대로 그어 놓은 국립공원 녹색 경계선 속에만 지리산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산은 인간이 패턴화시켜서 금을 그어 놓은 그 지점에서 보전이냐 개발이냐로 갈리지 않는다.

 

국립공원을 살짝 벗어난 지역의 막개발 때문에 지리산 속에 사는 무수한 생명들과 산자락에 기대어 사는 지역민들이 받을 영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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