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이야기

[스크랩] [순례 넷째날: 피아골에서 상훈사] 지리산 옛길을 복원하다

범주 2006. 5. 2. 10:51

지역민이 일으킨 연곡분교
녹색순례 4일 째는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토지초등학교연곡분교장에서 시작된다. 농평마을의 당재를 넘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신흥마을, 쌍계사를 지나 일반인에게 낯선 상훈사로 이어지는 총 20km의 순례길이다. 연곡분교의 아침은 지난 3일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해가 뜨면 20명이 채 안되는 학생들의 소중한 등교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전국의 녹색연합 활동가와 회원들은 녹색순례길에 오르기 전 연곡분교 도서관에 기증할 책을 모았고, 지난 밤에는 아이들과 나눌 말을 책표지에 또박또박 새겼다. 폐교 직전의 학교를 선생님과 지역주민의 힘으로 다시 세운 곳인 만큼 애정도 깊다. 교육의 최우선은 아이들의 눈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는 원칙을 어기지 않기로 다짐한 곳이다. 발가락에 물집이 늘고, 학교 마루 바닥의 새우잠 덕택에 3일의 피로는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길에서 길을 묻다가 뚝 끊어진 기분입니다.” 아쉬움을 전달하는 녹색순례 상반기 참가자들을 보내고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또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당재로 오른다.

▲ 순례 넷째 날 연곡분교를 떠나 당재에 오르려 하는 녹색순례단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은 옛길, 당재
피아골 매표소에서 오른편 능선을 향하면 당치, 농평마을이다. 지리산 사람들의 사계절이 그렇듯이, 이곳 봄철은 고로쇠 수액과 녹차 새순으로, 여름은 민박, 가을은 밤 생산을 주로 한다. 창창한 젊음도 한바가지 땀을 40~50분 흘려야 오를 수 있는 곳, 바로 구례군과 하동군을 연결하는 ‘당재’다. 우리 옛 지명 중 치, 현, 재는 모두 고개를 뜻하기에, ‘당재’나 ‘당치’는 똑 같은 지명이다. ‘당재’는 당치, 농현마을 사람들이 주로 고개 넘어 경상도 칠불사나 쌍계사를 이용하거나, 혹은 물레방아간에서 쌀을 빻기 위해 사용한 옛길이다. ‘당재’를 경계로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과 화개장터로 유명한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을 넘나들었다. 화개장터의 옛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이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개길로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물 장수들이 실, 바늘, 명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등을 봇짐지고 구례길을 넘어오고, 하동길에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장수들의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조기나 고등어가 들어오곤 하던 곳”이라고 문인 김동리 선생은 기억했다. 물론 지금이야 애써 힘든 길을 넘어와 막걸리 한잔에 왁자지껄하던 장터라기보다는 다듬어 놓은 관광지가 돼 버렸지만...
▲ 당재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는 녹색순례단
지리산, 고로쇠와 녹차 열풍
당재를 끼고 돌아가는 계곡 옆, 습기를 머금은 땅엔 긴 대를 쭉 내밀고 고사리가 쑥쑥 돋아나며 완연한 봄을 알린다. 노란 네 장의 꽃잎으로 피나물이 지천이다. 또한 지난 가을 미처 거두지 못한 밤송이 대신, 녹차 새순이 돋아나고, 초봄 고로쇠 수액을 채취했던 호스가 어지럽게 이어지고 있다. 지리산, 특히 피아골과 당재 너머의 화개면 주민들에게 고로쇠와 녹차는 과연 효자라 할 만하다. 해마다 한철 농사로 쏠쏠한 돈다발을 안겨주니, 사실 친자식도 이만한 효자는 없을 것이다. 화개면은 신라시대 김대렴이 처음으로 녹차를 전파하여 생산한 ‘차시배지’로 자부하는 곳이다. 허나 수령 20년 가까이 된 밤나무를 잘라 고로쇠를 심어 수액을 뽑아내고, 경사 급한 언덕에 자리잡은 다락밭인 녹차밭은 주변 산림을 베내면서 세를 확장하고 있다. 지리산 전체 산림 생태계가 고로쇠와 녹차로 단순화 된다해도 과장은 아닐 정도다. 지리산의 가내수공업적인 녹차밭은 전남 보성과 제주도 한라산과 같이 기업형으로 뒤바뀌고, 집단으로 고로쇠를 채취해 마시는 모양새는 비단 지리산에 마지막 숨통을 이어가는 반달가슴곰의 이미지와 합쳐진다. 분명, 지리산 토지면과 화개면의 지금 모습은 최치원 선생이 생각한 지리산의 선계(仙界)는 아닐 것이다.


▲ 무분별한 고로쇠 채취와 녹차 재배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지리산
환지리산 생태문화역사 관찰로 구상
지리산은 고속도로처럼 뚫려있는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주능선만이 아닌, 숱한 생태, 문화,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자부심 강한 명산이다. 1980년대 이후 백두대간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연간 1만명 이상의 산악인들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지리산 주능선 중심의 탐방객수도 300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종주산행 외에 환경친화적 지속가능한 관광모델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면서 산을 찾는 탐방문화의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녹색연합 전문기구인 ‘녹색사회연구소’에서는 주능선 중심 탐방문화의 대안을 마련하고, 산촌마을이 지속가능한 탐방거점이 되도록 유도하기 위해 「환지리산 생태문화역사 관찰로」조성을 위한 조사와 연구를 착수했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접한 5개 시군을 중심으로 생태문화역사자원과 길을 조사하여 국립공원 바깥으로 탐방객들이 걸으며 체험할 수 있는 관광로를 기획한 것이다. 특히 ‘당재’를 통한 전라도와 경상도 문화의 만남에 주목했고, 가족중심의 걸을 수 있는 탐방로를 기획했다.

환지리산 생태문화역사 관찰로는 길을 걸으면서 국토를 향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지역거점을 연계하여 지역주민이 참여하고 만나는 길이다. 녹색연합과 ‘2006 지리산순례단’은 「환지리산 생태문화역사 관찰로」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자연을 보전하고 활용하는 대안의 가능성을 엿보기 위해 ‘당재’를 찾은 것이다. 팬션건설이나 도로확장을 바탕으로 한 여가산업과 관광산업이 아니라 지금 ‘당재’가 가지고 있는 생태문화역사 자원과 이미 이용하고 있는 옛길을 활용하여 풍부한 내용으로 ‘걸을 수 있는’ 순례길을 만드는 것이다.

공생의 길을 다시 묻는다
순례단은 ‘당재’를 넘어 칠불사, 삼신(三神)동, 쌍계사 입구를 지나 상훈사로 향한다. 경주최씨 대흥회에 따르면, 화개면 삼신동의 바위에 최치원 선생의 친필이 있는 곳으로 유래가 깊다. 특히 영신(靈神), 의신(義神), 신흥(神興)의 세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령스럽고 인간에 의로운 산신이 부흥하는 삼신동은 골골이 깊은 지리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쌍계사를 지나 상훈사로 향하는 길은 형제봉 정상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이어지는 임도길로 3시간을 꼬박 걸어야 한다. 매번 선거 때가 되면 산림관리의 차원에서 임도건설과 관리가 주장되었지만, 실상 속셈은 수렵허가와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건설이었다. 임도가 건설되면서 수렵의 증가는 야생포유류의 조류 개체수를 급속히 감소시켰고, 차량의 지나친 임도 이용은 이곳 생태이동통로를 단절했다.

▲ 로드킬 - 무분별한 임도건설은 야생동물의 삶터를 단절,축소시킨다.

▲ 생태계 이동통로를 단절시킨 무분별한 임도건설

순례단은 녹색순례를 통해 지리산의 다양한 길과 이야기한다. 성삼재관통도로와 ‘당재’의 옛길, 섬진강 둑방길과 19번 국도, 또한 피아골 주민들의 뱃길과 상훈사 임도 등 지리산의 숱한 인간의 길에서 우리는 역사, 문화, 생태, 사람이 만나는 ‘공생의 길’을 다시 묻는다. 형제봉 8부 능선에 위치한 상훈사의 골이 깊다. 밤하늘은 계곡 양쪽 봉우리에 갇혀 딱 90°만 열어 보인다. 스님들의 하안거와 동안거를 준비하는 상훈사 스님들의 마음어린 저녁과 말씀을 받는 동안 서편 자락으로 달이 기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물소리 고요한 산사의 밤으로 녹색순례 4일째를 접는다.
▲ 상훈사에 오르는 길에서 만난 금낭화


* 글 : 녹색순례 홍보팀
위 글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greenkorea.org
* 2006 지리산 녹색순례 홈페이지 http://pilgrim.greenkorea.org/2006/

출처 : [순례 넷째날: 피아골에서 상훈사] 지리산 옛길을 복원하다
글쓴이 : 아름다운지구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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