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이야기

[스크랩] 첫사랑은 화석처럼

범주 2005. 5. 25. 08:47
첫사랑은 화석처럼



순전히 자기 최면이었지
그날 이후부터
돌을 보면 돌 속에 꽃이 피었어

눈길 마음길 몸길이
쏠리다 못해 그만
댐의 수문이 터지고 말았어
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홍수였지

언제 어디에선가
한번은 본 듯한 그 모습 그대로
내 마음의 중생대 백악기의 화석이었지

돌 속의 고사리 이파리들
일제히 그녀를 향해 웃자라고
덩치 큰 초식 공룡 한 마리
그녀의 가슴팍에 쿵쿵 발자국을 찍었어

그리고 또 그리고
나는 화살표처럼 뼈만 남은 물고기
억 년이 지나도록
그녀를 향해 헤엄을 치지만
끝끝내 돌아서며 훔치던 눈물
창녕 우포늪의 빗방울 화석이었지

그 누구를 만나도
꼭 한번은 본 듯하여
자꾸만 추억의 수문이 터지고

언제나 첫사랑은 화석처럼
몸은 떠나고 표정만 남아서
몸은 떠나고 이렇게 무늬만 남아서

그리고 또 그리고는 있어도
그러나 또 그러나 반전은 없었어

비로소 몸이 떠나고
유체이탈이 된 돌 속의 무늬
그 표정이 바로
누구에게나 도사린 첫사랑의 진신사리였어
<이원규>

출처 : 첫사랑은 화석처럼
글쓴이 : 피아산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