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29일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에 사람이 오른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산이 거기 있어 내가 간다.” 1921년 영국의 1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로 나서 3년 뒤 해발 8500m의 고빗길에서 실종된 ‘비운의 등산가’ 조지 말로리는 ‘왜 산에 가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2003년 5월 29일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에 사람이 오른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뉴질랜드 출신인 영국 원정대원 에드먼드 힐러리(84)와 네팔의 셰르파인 텐징 노르게이(86년 사망)가 인간의 발길을 무수히도 거부했던 에베레스트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영국에서 기념우표가 나오고 네팔은 27일부터 3일간 힐러리 등 세계산악계의 거두를 초청한 세미나와 자축행사를 열어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산악계는 77년 세계 8번째로 고 고상돈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신비의 에베레스트
서쪽으로 파키스탄에서 동티베트까지 끝없이 이어진 3800㎞가 만년설로 덮인 히말라야는 해발 8000m가 넘는 주봉우리가 모두 14좌. 1852년 인도에서 에베레스트를 최고봉으로 처음 측량한 영국 측량장관인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 1865년부터 에베레스트산으로 불렸다. 에베레스트를 두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티베트는 ‘초모룽마(대지의 여신)’, 네팔은 ‘사가르마타(눈의 여신)’로 표기하고 있다. 8848m의 산높이는 1954년 인도가 에베레스트 주변 12곳에서 측정한 평균치가 공인. 98년 미국연구진이 위성항법시스템(GPS)수신기로 조사한 결과 2m 높은 8850m라고 주장해 논란도 있다.
●힐러리와 텐징의 동반신화
에베레스트는 1921년부터 모두 12차례의 도전장을 내민 영국·미국·스위스탐험대에 13명의 희생자를 돌려 주며 32년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30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 4일을 남기고 영국 에베레스트 도전 ‘9전10기’의 신화가 마침내 이뤄졌다. 양봉업을 하면서 뉴질랜드의 남알프스에서 훈련을 하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빛내기 위해 전격 발탁된 키 192㎝의 에드먼드 힐러리(당시 34세)와 네팔의 텐징 노르게이 셰르파(당시 39세)가 1차 공격조 실패에 이어 2차 공격조로 투입됐다.
●목숨을 담보로 한 영원한 도전!
15번째로 등반루트가 개발된 98년부터 한해 등정자는 매년 100명을 넘고 있다. 53년부터 에베레스트 정상를 밟은 사람은 지난해 기준으로 1655명. 사망자는 162명이다. 에베레스트에 처음 도전한 1921년부터 따지면 175명이 산에 묻혔다. 그 중 셰르파 희생자는 30%(54명). 인터넷사이트 ‘마운트에베레스트’(www.mounteverest.net)는 올해 봄철 정상 등반에 43개팀이 도전장을 낸 것으로 집계했다. 지난 24일 하루 등정자가 74명(역대 3위)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올해 등정자가 140명을 넘어서 29일까지는 150명 돌파가 예상된다. 9월 초~11월 중순의 가을철 등정자 예상치까지 합치면 2001년 수립된 한해 최다등정기록(182명)도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영원한 에베레스트의 그림자 셰르파
셰르파는 짐꾼이나 단순한 가이드가 아니다. 준비 상황은 물론이고 등정루트 선정부터 정상 공격시간을 결정하는 데까지 조언한다. 티베트어로 ‘동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네팔 고산지대의 티베트인을 가리킨다. 셰르파의 존재는 텐징 노르게이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하면서 알려졌다. 정상급의 셰르파는 보통 2개월 걸리는 정상까지 등반대의 길잡이를 맡아 총 1500달러 정도를 받는다. 셰르파족은 성씨가 모두 셰르파라는 게 이채롭다.
●신음하는 에베레스트
연간 이곳을 찾는 사람은 2만여명. 네팔 정부는 등반루트에 따라 7인 원정대 기준으로 5만~7만달러의 입산료를 매기지만 입산객을 적정선으로 통제하기가 어렵다. 96년부터 탐험대마다 4000달러의 청소 보증금을 물려 산소통, 텐트말뚝은 물론이고 화장지, 음식물찌꺼기, 시신까지 갖고 내려오도록 했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산이 거기 있어 내가 간다.” 1921년 영국의 1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로 나서 3년 뒤 해발 8500m의 고빗길에서 실종된 ‘비운의 등산가’ 조지 말로리는 ‘왜 산에 가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2003년 5월 29일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에 사람이 오른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뉴질랜드 출신인 영국 원정대원 에드먼드 힐러리(84)와 네팔의 셰르파인 텐징 노르게이(86년 사망)가 인간의 발길을 무수히도 거부했던 에베레스트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영국에서 기념우표가 나오고 네팔은 27일부터 3일간 힐러리 등 세계산악계의 거두를 초청한 세미나와 자축행사를 열어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국산악계는 77년 세계 8번째로 고 고상돈 대원이 등정에 성공했다.
●신비의 에베레스트
서쪽으로 파키스탄에서 동티베트까지 끝없이 이어진 3800㎞가 만년설로 덮인 히말라야는 해발 8000m가 넘는 주봉우리가 모두 14좌. 1852년 인도에서 에베레스트를 최고봉으로 처음 측량한 영국 측량장관인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 1865년부터 에베레스트산으로 불렸다. 에베레스트를 두고 국경을 접하고 있는 티베트는 ‘초모룽마(대지의 여신)’, 네팔은 ‘사가르마타(눈의 여신)’로 표기하고 있다. 8848m의 산높이는 1954년 인도가 에베레스트 주변 12곳에서 측정한 평균치가 공인. 98년 미국연구진이 위성항법시스템(GPS)수신기로 조사한 결과 2m 높은 8850m라고 주장해 논란도 있다.
●힐러리와 텐징의 동반신화
에베레스트는 1921년부터 모두 12차례의 도전장을 내민 영국·미국·스위스탐험대에 13명의 희생자를 돌려 주며 32년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1953년 5월 29일 오전 11시30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 4일을 남기고 영국 에베레스트 도전 ‘9전10기’의 신화가 마침내 이뤄졌다. 양봉업을 하면서 뉴질랜드의 남알프스에서 훈련을 하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빛내기 위해 전격 발탁된 키 192㎝의 에드먼드 힐러리(당시 34세)와 네팔의 텐징 노르게이 셰르파(당시 39세)가 1차 공격조 실패에 이어 2차 공격조로 투입됐다.
●목숨을 담보로 한 영원한 도전!
15번째로 등반루트가 개발된 98년부터 한해 등정자는 매년 100명을 넘고 있다. 53년부터 에베레스트 정상를 밟은 사람은 지난해 기준으로 1655명. 사망자는 162명이다. 에베레스트에 처음 도전한 1921년부터 따지면 175명이 산에 묻혔다. 그 중 셰르파 희생자는 30%(54명). 인터넷사이트 ‘마운트에베레스트’(www.mounteverest.net)는 올해 봄철 정상 등반에 43개팀이 도전장을 낸 것으로 집계했다. 지난 24일 하루 등정자가 74명(역대 3위)으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올해 등정자가 140명을 넘어서 29일까지는 150명 돌파가 예상된다. 9월 초~11월 중순의 가을철 등정자 예상치까지 합치면 2001년 수립된 한해 최다등정기록(182명)도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영원한 에베레스트의 그림자 셰르파
셰르파는 짐꾼이나 단순한 가이드가 아니다. 준비 상황은 물론이고 등정루트 선정부터 정상 공격시간을 결정하는 데까지 조언한다. 티베트어로 ‘동쪽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네팔 고산지대의 티베트인을 가리킨다. 셰르파의 존재는 텐징 노르게이가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하면서 알려졌다. 정상급의 셰르파는 보통 2개월 걸리는 정상까지 등반대의 길잡이를 맡아 총 1500달러 정도를 받는다. 셰르파족은 성씨가 모두 셰르파라는 게 이채롭다.
●신음하는 에베레스트
연간 이곳을 찾는 사람은 2만여명. 네팔 정부는 등반루트에 따라 7인 원정대 기준으로 5만~7만달러의 입산료를 매기지만 입산객을 적정선으로 통제하기가 어렵다. 96년부터 탐험대마다 4000달러의 청소 보증금을 물려 산소통, 텐트말뚝은 물론이고 화장지, 음식물찌꺼기, 시신까지 갖고 내려오도록 했다. 그러나 환경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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